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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nova







 차라리 비라도 왔으면 싶을 정도로 조용한 밤이었다. 밖에서는 서늘한 밤바람과 정원의 장식품 위로 반사되는 달빛이 사람 키보다 큰 응접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다가 그 안쪽을 지배하고 있던 어둠에 막혀 그대로 돌아가고는 했다. 중앙의 빈 소파 대신 벽에 붙어있던 딱딱한 의자에 옆으로 틀어 앉은 사샤는 아무 것도 없는 방 중앙의 허공을 응시하며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을 규칙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톡, 톡, 손톱 대신 가죽으로 된 장갑 끝이 원목 테이블에 부딪치는 부드럽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몇몇 유령이나 인간들이 응접실에 들어올 때마다 불도 꺼 놓은 채 뭘 하고 있냐는 질문을 던진 사람도 있었지만 사샤는 계속 혼자 어떤 생각에 잠겨있는 것처럼 못 들은 척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러면 사람들은 이내 자기 볼 일만 마친 뒤에 방에서 나가보고는 했다. 분침이 정각을 지나는 시각마다 중앙 계단 쪽에 있던 시계가 종소리를 울렸고, 그 소리가 들릴 때가 되면 사샤가 문득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무의미하게 시간을 확인한 뒤에 다시 집어넣는 식의 행동도 몇 번 반복했었다. 한 번씩 화면을 노크할 때마다 전파 수신이 불가한 상태라는 상태 메시지가 액정 상단에서 깜박이다가 사라졌다. 한껏 가라앉은 밤이었다.



 지금 기분이 나쁜가? 사샤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기분이 좋은가? 이번에는 확실히 '그건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새벽 두 시를 지나는 종이 다시 한 번 울리자, 시간을 한 번 더 확인한 사샤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애매한 기분들을 어떻게든 일단 마무리하고 쑤셔넣은 채로 적당히 옷가지를 챙겨서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서는 수밖에 없었다.




계단을 올라서 자기 방이 있던 왼쪽 대신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은 것은 지극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창문과 복도가 모두 닫힌 2층에서는 얼마 남지 않은 빛으로 복도를 간신히 비추는 작은 크기의 샹들리에와 촛불들만이 남아 있었다. 깨끗하지만 어딘가 우울한 벽지. 어둑한 조명. 발소리를 숨기는 카펫. 평소라면 반겼을 만한 요소들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쪽 복도의 끝에는 아직 창문이 남아있었다. 그 때의 일이 상상가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창문이었다. 폭파와 함께 한 그을음이라든가, 바닥에 튄 핏자국이라도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어야 정상일 텐데, 고용인들이 이런 면에서는 철저하고 빠르게 정리를 모두 끝낸 것 같았다.



 그는 이내 창가를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누군가 떨어져 죽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깨끗한 정원이었다. 








 밤에는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눈을 감을 때마다 아무 기억 없이 죽은 듯 잠에만 들었었던 사샤에게 이제는 낯선 경험이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이미 해가 하늘에서 자취를 감추고 심해처럼 새까만 어둠만이 머리 위로 펼쳐져 있던 어느 산 위의 숲이었다. 인가나 건물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길도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로 낙엽이나 나뭇잎 따위만 흙 위로 내려앉은 그 어두운 숲 속에 사샤는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눈 앞에는 아무도 없었고, 등 뒤로도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왼손과 오른손이 자리하고 있던 양쪽으로는 바위나 나무 같은 풍경만이 보였고, 아무 쪽이나 일단 몇 걸음 걸어가보다가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멈춰 선 사샤에게 남은 방향의 선택지는 고개를 한 번 올려보는 것뿐이었다.



 도시에서 자주 보았던 희끄무레하거나 칙칙한 빛의 잿빛 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푸른 광채를 섞은 새까만 물감을 그대로 짜서 풀어놓은 것 같은 캔버스 아래에서 흰 꽃잎을 흩어놓은 듯 반짝이며 빛나는 점들만이 사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고요하고 광활한 하늘 아래에서 그는 모순적이고도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일종의 압도와 허상이 어우러진, 편안한 긴장과 같은 감정이었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정도로 잔인하게 새까맣고 커다란 그 색채가 시야에 다가올 수록 마치 빛 한 점 들지 않는 심해로 떨어지다가, 이내 수압은 커녕 아직도 물 위에 반쯤 떠서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과 같은 애매한 기분이었다. 사샤는 그제서야 슈리가 말했던, 그녀가 보아오던 별들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었을 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샤는 저택에 오기 전 평소에 잠에 들기 전에 창문을 닫을 때마다 보았던, 점멸하던 가로등 불빛만이 유일하게 빛을 띄우는 수단이었던 그 탁한 회색 하늘을 잠깐 기억했다. 같은 시간을 살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밤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 언급했었던 '가장 예쁜 별'을 찾아보기로 했다. 누군가 그걸 찾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했었던 것이 기억났다. 하늘 위로 촘촘히 박힌 별들은 그 하나하나를 따지기 시작했을 때에는 서로 비슷해보였다. 어떤 별은 다른 별들보다 좀 더 크게 보였고, 어떤 별은 다른 별들보다 유독 빛나고 있었다. 흰 잉크로 된 폭죽을 터뜨려서 그대로 흩뜨려놓은 화면 같았다. 그 가르침이란 것을 아직 받지 못했으니 별을 보는 법을 알 리가 만무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휴대폰이라도 찾아보기 위해 품에 손을 넣었지만 그 대신 알 수 없는 종이쪽지만 한 장, 사샤의 손에 잡혀 딸려나왔다. 



살짝 구겨진 듯한 종이 위에 어린 애가 급하게 손으로 쓴 듯한 삐뚤빼뚤한 글씨. 짧은 세 글자. 초대장. 주머니 안쪽 품에 넣어둔 채로 잊어버려서인지 약간 귀퉁이가 닳은 것을 제외하고는 처음 접어놓았던 모양 그대로 전혀 달라지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지금 당장 참고할 만한 약도조차 그려져있지 않았지만 사샤는 일단 종이에 쓰인 그 짧은 단어를 오랫동안 다시 천천히 되짚어보며 다시 아무렇게나 발걸음을 일단 옮기기 시작했다.



 그 구불구불한 손글씨를 다시 보면 문득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었다. 몇 주 전의 기억들이 사진첩처럼 한 장씩 꺼내져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공식적인 초청으로 카운트할 수 있는 지조차 알 수 없는 엉성한 초대장을 건네준 사람과 처음 만난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속에 적혔던 단어들이 떠올랐다. 어리다. 여자. 작다. 힘이 약하다. 혼자 높은 곳에서 내려오기 힘들어한다. 긴 머리. 밝은 눈동자. 주로 그런 정보들이 주로 사진첩 안으로 들어와서 쌓이기 시작했다. 특이하지 않은 인상이었다.



 질문을 던지거나 눈에 들어올 때마다 하나씩 단어가 추가되었다. 



 별. 연구소.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팔짱. 접촉. 얇은 손목. 내가 좋다고 말함. 무섭지만 밝게 행동하는 중. 순진하다. 딱밤이 아픔. 사람을 의심하고 싶지 않아한다. 잘 우는 사람. 걷는 모양새. 발소리. 표정. 이상한 사람.

이상한 사람. 슈리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마지막 즈음에 던져보았던 질문들은 일종의 관찰과도 같았다. 평소에 사샤 자신이 따라오던 사고방식과는 너무나도 다른 방향의 사람이었던, 슈리의 존재는 그의 생활에서 일종의 변칙이었고, 사샤는 그를 어떻게든 한 번 캐내어 살펴보고 싶어했다. 어떤 반응이 나오는가? 어떤 생각을 하는가? 어떤 기분을 느끼는가? 이해를 할 수 있을 듯, 없을 듯 아슬아슬한 궁금증만이 피어올랐다. 왜 웃는가? 왜 우는가? 왜 슬퍼하는가? 가설을 세워보기 위해 일부러 누가 들어도 믿지 않을 법한 거짓말을 꺼내본 적도 있었다. 



 몇몇 날들은 반대로 질문이 돌아올 때도 있었다. 어떤 질문에는 사실대로 대답했고, 어떤 질문에는 거짓말로 대답했다. 후반에 꺼냈던 질문들이 차라리 쉬웠다. 거짓말을 하면 편했다. 반면에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해서 답을 미루어놓은 질문도 존재했다. 텅 빈 나뭇가지가 발 아래에서 바스러지는 마른 소리에 사샤는 잠깐 눈을 깜박였다.


 -그러면 슈리 싫어요? 


  그 질문에는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었다. 싫어하지 않는다고 확실히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사샤 오빠도 슈리를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이어서 터져나온 그 질문에만큼은 끝까지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긍정도, 부정도, 어느 쪽에 가까울 거라고 사샤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으므로. 거짓말을 못 하는 타입이라고는 스스로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어서 거짓말도 일단 시도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 사샤는 그가 잠에 들기 전, 아무도 없던 응접실에서 왜 혼자 좋지 않은 기분을 풍기며 수 시간 동안 앉아있어야 했는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었다. 아직 슈리가 죽는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했는데. 물어보고 싶은 게 더 있었는데. 대답해야 할 것도 많았는데. 가야 할 곳이 많았는데. 궁금한 게 많았는데. 투정처럼 따라나오는 갖가지 이유들 끝에 마침표를 찍는 문장이 결국 나왔다. 그런 것들이 많았는데 죽어서 기분이 나빴다. 죽었다는 사실이 싫었다.






 길도 없는 숲 속에서 무작정 아무 방향으로나 걸었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사샤는 저 멀리서 어떤 사람 하나가 빽빽하던 나무조차 잦아들은 낮은 언덕 위에서 하늘을 구경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길다란 머리카락, 작은 체구, 밤에 실외로 나오기에는 조금 춥지 않을까 싶은 옷차림새까지. 눈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어느 쪽으로 걸었든 여기로 만나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꿈 속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커다란 우연이었다. 언젠가 언급했었던 그 연구소라는 건물은 주위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있다는 것으도 약속은 충분할 것 같았다. 들고 있던 초대장을 다시 품에 넣은 사샤가 그 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야기들. 예쁜 별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는 말이나 연구소를 구경시켜주겠다던 등의 약속들은 슈리의 생애가 결국 한 줌의 재로 끝나기 전까지 하나도 이룰 수 없게 되었지만, 대신 사샤가 그녀에게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의문점 들 중 어떤 한 가지의 해답에 가장 가까운 말을 슈리는 그의 마음 어딘가에 심어주고 떠나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만이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슈리가 그에게 반문했던 질문들 중에 유달리 대답할 수 없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슈리가 어쩌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르쳐 준 적이 있었음을.



 걸음을 옮길 때마다 버석이는 낙엽 소리가 고요를 깨고 손을 어깨에 얹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가기 전까지 한 발자국 정도가 남았을 때, 앞에 있던 인영이 인기척을 들은 것처럼 천천히 사샤 쪽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방향을 트는 어깨에 따라 그 위로 흐르듯이 얹혀있던 머리카락이 길게 흔들렸다. 걸음이 이어질 때마다 발끝이 땅에 닿는 순간이 한껏 늘어진 테이프를 재생하는 것처럼 지나치게 느린 것 같다고 느껴질 순간, 언젠가 슈리에게서 들었던 어떤 말이 그 뒤를 이어서 문득 사샤의 머리 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분명 몇 주 되지도 않았을 때 들었던 목소리가 분명한데도, 마치 물에 푹 잠긴채로 보는 먼 하늘의 별들처럼 기억 한편의 어딘가 흐릿하게 아득하고 먹먹한 말들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오랫동안 관찰하기 힘들잖아요....











 눈을 떴을 때, 자기 전에는 불을 모두 꺼두어 깜깜했었던 방 안은 이제는 커튼 새로 흘러오는 어둑한 빛으로 인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눈을 두어 번 깜박이다가 시계를 확인했다. 다섯 시. 평소에 일어나던 시간에 비해 훨씬 이른 시각이었다. 꿈이군. 그렇게 작게 혼잣말을 읊었다. 꿈을 꾸는 건 또 오랜만이었다. 저택에 사는 또 어떤 고약한 유령이 장난을 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유령이라느니, 죽은 사람의 영혼이라느니, 그런 것들을 사샤도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와서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이야기까지 나눈 뒤에도 그 존재를 부정할 정도로 고집센 인간 또한 그는 아니었다. 꼭 최근에 죽어나간 사람이 아니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원한을 가진 유령이 몇 명 정도 밤마다 돌아다닌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장소였다, 이 저택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힘이 있었다.



 차가운 물로 가볍게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린 뒤 사샤는 방문을 나섰다. 어제 밤에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 걸 깜박하고 그대로 침대 위에 누워버렸기 때문에 다시 방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등 쪽이 조금 구겨진 것을 제외하곤 차림새가 별 문제가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창문 수가 적어서인지 복도는 아직 방보다 조금 더 어두운 상태였다. 서늘한 새벽빛이 들어오던 방의 창문에 비해 낮고 따뜻한 난색의 조명이 어제 밤처럼 그대로 복도 위를 비추고 있었다. 발걸음은 조용했다. 그대로 걸음을 옮기며 평소 그랬던 것처럼 중앙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대신 이번에는 쭉 앞으로 걸었다. 서쪽 복도 끝에는 어제도 보았던 창문이 있었다.



 사샤는 창가를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어슴푸레한 서광. 서서히 동이 트는 것인지 텅 빈 정원 위로 새벽이 내려앉고 있었다. 누군가 그 위로 추락했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깨끗한 정원이었다. 기억에서 잊을 수 없던 그 새까만 밤에,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그 밝았던 빛과 함께 폭발해 마치 그대로 별이라도 되기 위해서 하늘로 날아가버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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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5. 22:44.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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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조지 로슬야코바는 언제나 자신이 불행하다고 믿으며 사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는 알파벳을 깨우치고 혼자서 제대로 걸어다닐 수 있게 된 나이 이후의 사십 년이 넘는 인생 대부분을 말 몇 마디로 그를 밟아 뭉개버릴 수 있는 다른 이들의 눈치나 살피며 보냈다. 러시아 이민자인 그의 아버지 알렉세이는 늘 어린 조지가 잠에서 깰 때마다 옆방에서 독한 냄새가 나는 술병이나 빨고 있었고, 어머니 마리테스는 덥수룩하게 뻗친 머리로 집에 하나 남은 리어카를 끌고 나가 케찹을 잔뜩 뿌린 핫도그를 팔곤 했는데 날씨가 안 좋아 그조차도 안 되는 날이면 근처 낡은 식료품 가게에서 몰래 당근이나 달걀 따위를 훔쳐와 소금투성이 국을 끓여주곤 했다. 조지의 하나밖에 없는 형은 그가 열 살이 되었을 때 먼저 집을 나가버렸다. 조지 또한 열세 살이 되던 생일에 마리테스의 방 서랍에 있던 지폐 다발만 집어들고 집에서 나가 마약을 팔며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는 친구들 사이로 끼어들어간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는 스물 한 살에 험악한 인상의 포주에게 바가지를 쓰고 별로 예쁘지도 몸매가 환상적이지도 않고 그보다 일곱 살이나 더 많은 싸구려 창녀와의 하룻밤을 샀다. 그는 그녀의 방에 단 한 번 들렀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 후에 자신이 임신했으니 조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창녀를 그의 싸구려 아파트 앞에서 맞이해야 했다. 마음같아서는 여자를 흠씬 때려준 뒤 낙태를 강요하거나 나몰라라 어디다 버려둔 채 돌아오고 싶었지만 포주는 얼굴이고 몸매고 슬슬 망가지기 시작하는 그 여자를 자신의 가게 밖으로 내쫓은 뒤 젊은 아이들로 채우고 싶어했고 조지는 그를 거절하고도 사지 멀쩡하게 일을 계속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여자를 데려가야 했다.


  불행한 조지 로슬야코바에게 단 한 가지 재능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가장 최악의 상황만큼은 언제나 피해갈 수 있게 해주는 그의 직감이었다. 그 은총만큼은 조지가 어떤 시기에 어떤 사람에게 붙어서 어떻게 알랑거려야 할 지 모두 속속들이 가르쳐 주었다. 조지는 그 선택들이 가져다준 것에 전혀 행복해 하지는 않았어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는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어린 나이에 부와 명예가 아니라 갑작스런 아내와 그 뱃속의 딸을 남겨주었지만 대신 술에 취한 채로 포주에게 여자를 데려갈 수 없다며 객기 부리며 대답했다가 두들겨 맞아 비명횡사하는 식으로 그의 생을 끝내게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그의 인생은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연속이었다.



  멜이 처음 조지에게 아이를 데려오라고 했을 때 조지는 아직도 주위 형들에게 이름이 아니라 신입, 멍청이, 따까리 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새파란 열아홉 막내에 불과했다. 약속 장소인 생트 프레지아 서부 번화가의 어느 카페 앞 대신 그 옆 어둑한 좁은 골목에서 조지는 에이든을 처음 만났다. 야, 꼬마. 꼬마라고 불리기에는 훌쩍 큰 어린애였지만 십대 때 아이들이 으레 그러듯이 조지는 서너 살 많은 걸로도 열 다섯 난 어린애와 자신은 성숙함 면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믿는 중이었다. 꼬마, 너 컴패니에서 보낸 놈 맞지? 에이든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조지가 앞서 가는 대로 순순히 따라 차를 타고 빌딩 앞까지 따라왔다. 조지가 먼저 낡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 9층 버튼을 누르자 에이든은 한쪽 구석 모서리에 몸을 구겨넣듯이 살짝 몸을 움츠린 채로 서서 그 뒤로 엘리베이터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단단히 굳은 표정으로 모두 하나하나 관찰하듯 살펴보기 시작했다. 딩동. 9층입니다. 에이든이 조지를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 하자 그가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 끈이 엘리베이터 손잡이에 걸려 주욱 늘어지며 지퍼가 활짝 크게 열렸다. 커다란 공책 하나와 볼펜 두어 개, 그리고 자잘하고 반짝거리는 것들이 비스듬하게 튀어나온 책 경사를 타고 그 위로 굴러떨어졌다. 수북히 모은 동전과 지폐 다발, 손목시계, 값이 좀 나가보이는 여성용 반지나 귀걸이, 어디서 주우거나 훔쳤는지는 몰라도 대충 그런 것들이었다. 조지가 귀찮은 얼굴로 혀를 차고는 한 손으로 엘리베이트 문을 잡고 허리를 숙여 뭐라도 좀 같이 주워주려 했을 때였다. 탁. 에이든이 건드리지 말라는 듯이 그의 손을 세게 쳐내고는 금방이라도 칼을 꺼내쥐고 그에게 덤벼들기라도 할 것처럼 노려보았다. 어딘가 불안정하고 잔뜩 날이 선 모습이었다. 아, 그래, 안 건드릴게. 조지가 황급히 손을 떼고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말로 해, 새꺄. 벙어리냐? 이런 놈들이 나중에 꼭 대형 사고 쳐놓고 휘말려서 뒤지지. 에이든이 조지의 빈정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에 축 처진 가방 입구를 열어 쥐고는 흩어진 물건들을 주섬주섬 모으기 시작했다. 팔이 닿기엔 좀 멀리까지 날아가버린 동그란 반지 같은 것들은 그가 슥 눈짓을 하자 자기 혼자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와 그의 무릎 앞에서 멈춰섰다. 신기한 능력이었다. 다시 배낭 지퍼를 모서리 끝까지 완전히 닫은 에이든이 이제 가도 된다고 조그맣게 말했다. 그것이 조지가 처음 들은 에이든의 목소리였다. 조지는 그의 불편한 눈을 보았다. 창 밖의 가지에서 곧 떨어져내릴 늦은 여름의 나뭇잎보다도 연약한 색이었다.







  멜 그레이스톤이 에이든에게 정식으로 그의 회사에 들어올 것을 제의한 것은 그가 컴패니에서 회사로 세 번째로 나온 파견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려 했을 때였다. 조지는 그 세 번을 모두 몇 달 전에 장만한 싸구려 중고차를 몰고 에이든을 처음 만났던 그 거리 앞으로 그를 마중나가야 했고, 에이든은 언제나 형형한 눈빛과 함께 뺨이나 손등 어딘가에 새로 만든 상처를 하나씩 달고 와서 예의 커다란 배낭을 맨 채로 뒷좌석에 올라탔다. 한 번은 그를 배웅 나온 시나라는 컴패니의 젊은 여자 연구원이 그 상처가 무엇인지 대충 말해주고 돌아간 적도 있었다. 컴패니에서 제시하는 일들 중 직접 해결할 수 있고 돈 되는 일은 아무 거나 다 받아서 닥치는 대로 처리하고 다니며 먹고 살았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에이든에게 멜은 이미 3년차인 조지와 같은 금액의 월급을 제시해 결국 내일부터 출근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방 안에서 대화를 모두 듣고 있던 조지는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가 세상에서 가장 신뢰했던 그의 눈치와 직감이 오늘만큼은 닥치고 있어, 조지, 하고 경고했기 때문에 차마 그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에이든의 키가 슬슬 자기를 앞지르기 시작했을 때 조지는 그가 처음 사람을 죽이도록 내버려두었다. 고의였다. 자기 혼자만 세상 다 잃은 사람처럼 우울한 척 무게잡는 것이 얄밉기도 했고 이 쪽 세상이 덜 자란 남자애 하나에겐 그렇게 친절하고 쉽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알려줘서 조금 골려주고 싶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써먹을 만한 아랫사람이 생겼는데도 그가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 직접 처리하기 귀찮았다는 이유가 제일 컸다. 남에게 무언가를 시킨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생소한 쾌감이었다. 나는 다른 일이 있으니까 네가 직접 입막음하고 와. 에이든은 조금 복잡해보이는 표정이었지만 썩 내키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조지는 멜의 이름을 팔았다. 멜이 그러라고 했어. 에이든이 굳게 다문 입술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 없는 적개심, 자신 또한 누군가 아랫사람에게 명령을 내리고 질타할 수 있다는 처음 느껴보는 권력감. 저런 어린애는 하지 못하는 일을 자신은 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 모든 것이 아무렇게나 어우러져 치졸하고 사소한 저주로 남았다. 어디 하나 크게 실수라도 한 채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에이든이 생각보다 엄청 멀쩡한 얼굴로 돌아와서 조지는 조금 실망스러운 얼굴로 텅 빈 사무실 앞에서 그를 맞았다. 뭐야, 어떻게 했어? 잘 처리했어요. 에이든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차분하고 침착한 얼굴이었다. 오히려 조지의 예상을 깨고 노발대발한 것은 에이든이 아니라 멜이었다.

  보스도 알잖아요. 솔직히 그런 일엔 저보다 그 녀석이 더 적격이라서 시킨 거예요. 어제도 자기 혼자서 눈 하나도 깜짝 안 하고 실수 없이 해냈잖아요. 변명하는 조지의 새파랗게 멍든 뺨을 향해 멜이 어딘가 분노한 목소리로 외치며 다시 한 번 발길질을 날렸다. 녀석은 그런 일을 할 준비가 안 되어있어. 씨알도 안 먹힐 소리라고 조지는 생각했다. 멜이 조지를 때리던 접이식 의자를 이내 저 멀리 던져버리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 일을 시키려고 데려온 게 아니야. 그는 아직... 어리잖아. 마치 다 큰 어린이를 아직까지 과보호하는 부모와도 같은 태도였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조지는 멜이 요즘 들어 왜 그렇게 이상하리만치 관대했던 지를 알 수 있었다. 에이든이 조지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다닌 것도 아닌데 어떻게 언제부턴가 그보다 훨씬 비싸고 좋은 옷들과 깨끗한 구두를 신고 매일 아침 택시로 출근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모두 깨달았다. 왜 그가 그렇게 겁 없이 어깨를 꼿꼿하게 펴고 다닐 수 있었는지, 아무도 옛날 조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를 흔한 꼬봉처럼 취급하지 않았는지. 왜 그가 더 이상 옛날의 그 배낭을 애지중지 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는지. 조지는 울컥 화가 치밀었다. 


  조지가 멜의 그런 멍청한 가족놀이에 직접 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건 전혀 아니었다. 그런 간질간질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이제 와서 동경하기엔 그는 너무 그런 것들에 익숙하지 않은 채로 오래 살았다. 그는 좀 더 현실적인 것들을 추구했다. 그는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행운들을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아무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을 질투했다. 조지는 그와 같이 불행했던 이들은 모두 계속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똥통 안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옳다고 믿었다. 그가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쉽게 얻어버린 이들을 싫어했다.


  그 날부터 조지는 에이든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조지가 에이든을 싫어한다고 해서 에이든이나 그의 인생에 무언가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조지는 고작 그런 이유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크게 눈에 띄는 짓을 할 마음도, 그럴 능력도 없었다. 몇 달 후에 멜이 조지를 그의 사무실 안으로 불렀을 때, 그는 에이든이 책상 앞 소파에 편하게 앉아서 오늘 아침 배달된 신문이나 읽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1면에 난 어느 정치인의 이혼소송 기사가 문득 눈에 들어오고 나서야 조지는 멜이 몇 년 전 아내와 결국 이혼하면서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아들까지 결국 빼앗겼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 자리를 저런 놈으로 채우고 싶은 거라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닐 텐데. 비쭉이는 조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멜이 하고 있던 전화도 끊고 그를 불렀다. 조지, 네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 조지는 일부러 못 들은 척 잠시 대답을 피했다. 멜이 다시 그를 두어 번 부르자 반대편 소파에 앉아있던 에이든이 신문을 접으며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아마 멜이 그 상황에서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일 것이었다. 새 신발이 필요해서요. 이제는 제법 청년 티가 나기 시작하는 아이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신발은 내가 사줄 수 있단다. 필요없어요. 사람을 죽이고 신발 값을 벌겠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멜이 조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손 안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말을 제대로 못 있다가 결국 힘이 빠진 목소리로 그럼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다.


  조지는 태생부터 못된, 세상에 다시 없을 악인이라고는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도덕심이 똑바로 박혔다고도는 절대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스물 두 해 동안 그의 인생을 꽉 억눌러온 주변 환경과 열등감이 그의 성격을 비틀어놓았다. 사실 그가 예전 그 날 자기 일을 에이든에게 미루지 않았다고 해도 지금쯤 어떻게든 멜의 계획이 이런 식으로 잘못 굴러갔을 것임은 분명했다. 그래도 이 어긋남이 어쩌면 자신 때문에 출발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조지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고작 이런 걸로 인생이 행복해졌다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그 두 명이 그에게 큰 의미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남들의 불행한 면을 보는 것으로도 두어 시간 정도 기분이 나아진다고는 느끼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조지 로슬야코바는.



  조지가 출근할 때마다 그 모든 꼴뵈기 싫은 광경을 전부 참고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말했듯이 멜이 원했던 그 놈의 망할 가족 사업이 좋게 끝나지는 않을 것임을 한참 전부터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에이든을 보았다. 멜이 아무리 돈과 애정을 아무리 쏟아부어주어도 그는 블랙홀처럼 언제나 부족한 듯이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갈구라는 것이 버려진 아이들이 흔히 받고 싶어했던 애정이나 온기나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같은 그러한 따뜻하고 희망 넘치는 생기들이 아니라 항상 제 손아귀 안에 확실한 무언가를 더 많이, 더 제대로 움켜쥐고 싶어하는 그런 훨씬 기분 나쁘고 어두운 색의 종류였다는 게 문제였다. 조지는 사람을 읽을 줄 알았다. 그는 평생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이 직접 성공한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주위에서 누가 위로 치고 올라갈 사람이 될 것인지는 읽어낼 줄 아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에이든이 그에게 멜을 배신하라고 내뱉었을 때조차 조지는 놀라지 않았다. 에이든이 딱히 그를 큰 전력으로 치거나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거나 해서 그를 끌어들였을 리는 없었겠지만 그는 어쨌든 멜이 조지에게 관리를 맡긴 돈과 장부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는 조지를 포섭해야 했다.


  장부부터 넘겨. 에이든이 그에게 언제부터 그렇게 무례하게 말했는지는 조지가 기억할 수 없었다. 에이든과 그가 자라면서 어느새부턴가 둘 사이에 있던 힘의 관계가 역전되었고, 그를 따라 서로를 대하는 태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변화했다. 조지와 에이든 모두 그런 권력의 흐름을 잘 파악할 줄 알았다. 이제는 에이든이 조지를 아랫사람 부리듯이 했고, 조지는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마다 저 새끼가 어릴 적엔 내 말에 빌빌 기었는데, 하는 식으로 혼자 치졸하고 사소하게 자기를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의 인생관이었다. 치졸하고 사소하게 살더라도 그는 최대한 오래, 그리고 길게 목숨을 유지하고 싶었다.


  에이든이 멜보다 친절한 상사 타입은 절대 아니었다. 윗대가리가 바뀌면 지금보다 생활이 더 좆같아질 것임을 알면서도 조지는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멜의 신뢰와 쥐꼬리보다도 얇았던 의리를 팔고 지금 당장의 목숨을 얻었다. 그것이 1차적인 이유였지만 만약 에이든이 직접 찾아와서 그의 안전을 쥐고 위협하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조지는 그 제안에 단 몇 분 안으로 넘어갔을 것이었다. 세력이 갈라진다면 나이도 들고 정에 약해질 대로 약해진 인간보다는 좀 더 젊고 힘있고 교활한 남자의 측에 붙는 것이 그에게도 이득이었다. 그의 직감이 그렇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조지는 자신이 저지른 선택에 이번에도 만족해했다. 다만 그들이 마지막으로 왕의 머리를 잘라내기로 한 계획 막바지에서 갑자기 사무실까지 올라가는 복도에 있는 인간들을 모두 밀쳐내며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오는 고등학생 한 명이 끼어들 것이라고는 아무도 그에게 말해준 적이 없었다.


  이상한 놈이 사무실로 달려들었다는 말에 아래층을 보고 있고 있던 조지가 멜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땐 에이든이 이미 혼자 상황을 모두 정리한 뒤였다. 씨발 새끼. 죽여버릴 거야. 쓰레기만도 못한 개새끼가... 이미 일찍 들어오자마자 그에게 박살이 났는지 불청객은 온 몸에 타박상을 달고 마지막 남은 힘으로 간신히 욕만 줄창 내뱉고 있었다. 조지는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에이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 고딩 새낀 누구요? 조지가 묻자 에이든이 한참 뒤에 대답했다. 멜 아들. 처리할까요? 이번에는 에이든이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을 했다. 아니, 그냥 어디 병원에다 버려놓고 와. 

  조지는 에이든의 발 앞에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멜의 시체에 눈길을 주고는 블리스에게 전화하기 위해 휴대폰이 들어있을 주머니를 뒤지며 나머지 한 손으로 쓰러진 고딩 새끼를 들쳐메었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바로 달려왔는지 그가 메고 온 가방에 달린 반듯하고 네모난 명찰이 바닥에 질질 끌리다가 툭 떨어졌다. 데이브 그레이스톤. 조지가 문을 열고 나가자 그 사이로 흘러 들어온 빛에 명찰이 잠깐 반짝였다. 방 안에는 에이든과 멜의 시체 둘이서만 남게 되었다. 조지는 한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블리스의 번호를 힘겹게 누른 뒤 몇 달 전 찾아온 에이든을 보며 했던 생각을 마음 속으로 천천히 되뇌었다.


젊고.

힘있고.


...교활한.









  일주일 후 조지가 수금 업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는 막 빌딩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린 데이브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매 주 월요일 저녁에는 언제나 시덥잖은 복수나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칼을 들고 찾아오는 멍청한 놈들이 있었다. 둘은 건물 앞까지 잠시 걸었다. 세상 좆같지? 담배 필래? 데이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로비 유리문 앞에 다다르자 조지가 이제 가라는 듯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쨌든 못 들여보내줘. 거기서 되돌아오는 차분한 질문이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깔을 한 주제에 조금 뜻밖의 것이었다.


  "우리 아빠 회사였는데 일자리 하나도 못 줘요?"


  그 말을 전해들은 에이든의 대답이 더 가관이었다. 하고싶은 대로 내버려둬. 조지는 십 년이 지난 아직도 데이브가 왜 다시 그 빌딩으로 돌아왔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조지가 그였다면 멜이 집에 남겨놓은 돈을 가지고 어딘가 멀리 도망쳐서 최대한 조용하고 풍족하게 남은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처럼 아무리 비참하고 의미 없더라도 일단 자기 목숨을 제일 높은 가치로 치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사람이 아니었다. 조지가 문을 열어주면서 들어오라고 하자 데이브는 알 수 없는 감정을 굳게 다문 입술로 계단을 두세 칸씩 성큼성큼 걸어올라갔다. 조지는 데이브가 들어오고 나서 텅 비게 된 바깥을 한 번 보고는 문을 천천히 닫았다. 


  "그런데 나 대학 붙어서 학교 가야 하는데. 파트 타임도 받나요?" 어제 처맞다가 맛이 갔나, 사채업에 뭔 파트 타임이 있어. 조지는 하고싶은 대로 해주라는 에이든의 말을 떠올리며 그에게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짙은 색 복도 카펫 위에 뻐근한 발목을 툭툭 털던 데이브가 일주일 전부터 이제 에이든의 것이 된 사무실 쪽을 보며 빈정거렸다. "씨발같이 친절하네." 주말 전에 바꿔달은 사무실 앞 명패가 이미 떨어지기 시작하는 햇빛 끝물을 받아 우울하게 빛났다. 자세한 얘기는 그…. 거기서 조지는 이제 에이든을 무어라 불러야 할 지 몰라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들어가서 직접 얘기해봐, 나는 잘 모르겠으니까. 지금 와서 둘을 직접 대면하게 두는 게 옳은 결정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지는 에이든이 설마 평범한 남자애 하나 제압하지 못하겠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일단 사무실 문을 가리켰다. 조지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데이브가 바로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걸음을 옮겼다. 멜과는 생각보다 별로 닮지 않은 시퍼렇게 날이 선 눈이었다. 조지가 아주 옛날 멜의 명령으로 마중나간 적이 있었던 독기 서린 어떤 소년을 기억나게 했다. 그는 꺼림칙한 기분으로 아까 못 핀 담배라도 피러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 때, 언제나 그를 가장 나쁜 길에서만큼은 구해주었던 어떠한 직감 같은 것이 그에게 데이브를 똑바로 보라고 명령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사무실로 들어가는 데이브를 보았다. 조지 로슬야코바는 젊고, 힘있고, 교활한 데이브 그레이스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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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 필요도 없는 사람을 뭐하러 봅니까."


그는 언제나 잘 마무리되는 수식처럼 양 끝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들을 좋아했다. 명쾌한 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학 문제. 완료한 일과 능력에만 따른 가이드라인으로 떨어지는 배분들. 일이 있을 때에만 연락하는 필요와 요구의 의미에 의한 비즈니스적인 태도들. 우연히 발을 들여놓게 된 연예계에서는 그런 것들을 별로 기대할 수는 없었다. 쇼 비즈니스니까 어쩔 수 없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얽히고 설킨 실뭉치들처럼 지지부진한 인간 관계들에 그는 항상 반쯤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사람을 대하기 힘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과, 그 다른 사람들이 나중에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과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마치 답을 적어낼 때마다 다시 수정되는 문제를 처음부터 푸는 기분이었다.


 그럼 결국 일단 모두에게 잘 보이고 있으란 소리 아닙니까. 조금 더 젊은 시절의 에단이 어느 드라마의 촬영 시작 직전에 조명 감독에까지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나서 지친 얼굴로 그렇게 말했을 때 당시 매니저를 맡고 있었던 케이틀린이 어차피 이 업계라는 게 다 그렇죠, 하고 말하며 단호하게 입을 막은 적이 있었다. 약간 기분이 가라앉은 에단을 앞에 두고 케이틀린이 세트장 내를 둘러보며 다시 말했다. 또 인사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남았지. 아, 저 쪽에 계신 분은 레이지 씨예요, 에단. 저 분까지 인사하면 일단 오늘 만날 수 있는 분들에게는 모두 인사하는 셈이 되네요. 케이틀린이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혼자 세트 앞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 불량스러운 자세로 대본을 넘겨보고 있던 어떤 남자 쪽을 가리켰다. 에단이 천천히 시선을 돌려 그 손끝을 보았다. 자기 이름을 말하는 것을 들었는지 앉아 있던 남자가 잠깐 고개를 들어 시선을 그 두 사람 쪽으로 향했을 때, 에단은 처음으로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마음 안쪽에서 기어나오는 참을 수 없는 불쾌감. 남자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렇게 될 것임을 짐작한 것처럼 피어오르던 기분 나쁜 감정이었다.


"왜냐니. 이쯤 되면 그쪽도 뇌가 있다면 제가 왜 그 때 촬영 끝난 뒤에는 잠시나마 상대해줬는지 깨달았을 때가 된 거 아닙니까? 그럼 다시는 보지 말자고 화를 내야죠,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제가 그쪽을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 불평하면서 어린애처럼 징징대시든가."


이 남자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참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이 맞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럴 리야 당연히 없겠지만 마치 머리부터 발끝까지 만날 때마다 에단의 기분을 망치게 하려는 작정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처럼,


"그것도 아니면."


볼 필요도 없는 사람. 에단이 목 안쪽으로 천천히 단어를 짓씹어 삼켰다 .필요가 생긴다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평가였다. 차가운 표정 저 아래에서 숨죽이고 있던 욕심이 그르렁거리는 짐승처럼 낮은 목소리가 되어 이 사이로 흘러나왔다.


"아직 제게 내보일 수 있는 카드가 더 남으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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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








  교무실 제일 안쪽에 위치한 에이든의 책상 위에는 언제나 아무도 정체를 모르는 작은 장식용 유리병 하나가 있었다. 가끔씩 그의 차가운 눈길을 애써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용기있고 넉살 좋은 학생이나 다른 교사 몇 명이 그 손바닥만한 물병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이게 대체 무어냐고 묻고 가기도 했지만 에이든은 절대 그에 대답해준 적이 없었다. 병 안에 든 것은 항상 정체 모를 무색의 투명한 물과 비슷한 액체였다. 유리병 자체는 어디서나 흔히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장식용 유리병이었지만, 학기가 지날 때마다 병목에 달려있던 리본 색이 달라져있다든가, 코르크 마개 대신 플라스틱 뚜껑이 그 위를 덮었다든가, 몸통이 전체적으로 조금 좁아졌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 디자인이 미묘하게 달라졌기 때문에 그의 옆자리 교사인 조지는 가끔씩 그의 뒤로 지나가며 달라진 게 있는지 책상 위를 몰래 훑어보곤 했다. 대부분이 처음 봤을 때 한 번씩은 궁금해했지만 결국 그다지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던 그 물의 정체는 결국 에이든이 아니라 그의 반 학생의 입으로부터 나왔다. "그거 해수야." 문득 생각난 듯이 묻는 그의 친구에게 데이브가 교복 위로 입은 후드 자켓 지퍼를 주욱 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여름마다 내가 가져다 주는데."


  에이든은 곧 사십 년이 다 되어가는 평생동안 바다에 직접 가본 적이 없었지만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했다. 그 갈망은 그의 삶이 아니라 유전자 깊은 곳에서부터 새겨져 있던 것이었다. 그가 늘 앉아있는 교무실 창가 데스크 위로 쏟아지는 생트 프레지아의 무덥고 건조한 태양이 그를 괴롭힐 때마다 에이든은 제 기억에 있지도 않은 겨울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브라운관, 스크린, 책, 모니터, 그 어떤 곳에서 흘러나오는 파도 소리조차 그 갈증을 채우지 못했다. 나중에, 나중에. 미룰 때마다 치열한 삶으로 변명하던 그 목적이 지금은 이룰 수 없는 무거운 닻이 되어 그의 마음 한편 심해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가 아직 바다로 돌아가기도 전에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 있었다.



  선생님. 그의 혼현을 우연치 않게 처음 목격했던 날 데이브가 조금 당황한 듯이 말했다. 지느러미가 없어요.


  그게 없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상어는, 그건 그냥 환상 같은 거잖아요. 상징적인. 그는 한참 나중에야 에이든의 왼쪽 팔 어깨죽지를 따라 길게 내려온, 이십 센티는 될 법한 큰 흉터를 보고 그제야 이해하여 얼굴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난 상처인데요? 독니에 찔렸어. 대답 또한 그만큼 다분히 상징적인 말이었다. 실제로 찌른 것은 아무 것도 묻지 않은 그냥 평범한 나이프였다. "겁도 없이 그 상처 만들어준 사람은 무사해요?" "생각보다는." 생각보다는 훨씬 무사하지. 생략된 뒷말이었다. 다시 만나면 절대 무사하지 않게 될 거야. 말하지 않아도 데이브가 그 의도 정도는 알아챌 수 있는 더 긴 뒷말이었다.


  그것도 없으면서 무슨 바다에 가겠다고 그래요. 에이든은 침묵으로 대답했다. 이때까지 데이브가 나불거려온 대답해줄 가치도 없는 쓸데없는 질문들을 무시해주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침묵이었다. 그게 잘린 채로 그가 존재했던 적이 없는 예전처럼 바다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인간으로서도, 동물로서도 이제 에이든은 깊은 바다로는 돌아갈 수 없는 몸이었다. 그는 알 수 있었다. 수십 세기를 그와 그의 이름 모를 조상들이 인간으로 살아오면서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일종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딘가의 과학자들이 그의 이면에 달아놓은 바다 생물이라는 태그가 무색하게 숨도 못 쉬는 채로 심해로 가라앉아 죽을 지언정 고향 아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가고 싶으면 다음 방학때 가면 되잖아요. 여행사 검색해 줄까요? 그런 게 아냐. 에이든이 가고 싶었던 곳은 해변이 아니라 바다였다. 그는 옥상 난간에 기대 앉은 데이브의 멍청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개는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수압으로 짓눌러버릴 정도로 차갑고 냉혹한 그 깊은 세계는 평생을 광활하고 따뜻한 초원 위나 주인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온 개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복할 것이 있었다. 잃어버린 것은 되찾을 수 없었지만 무언가를 잃게 만들어 주는 것은 훨씬 쉬웠다. 그를 삼킬 바다로 돌아가기 전에.










   에이든이 오랜만에 참가한 연수에서 돌아오자 학교는 드디어 완공된 동쪽 증축 건물과 이번 학기에 새로 고용된 상담 교사에 대한 온갖 소문들로 떠들썩한 상태였다. 상담실의 전임자는 작고 우아한 고양이과의 경종 여자였는데 질 나쁜 상위 반류 학생들이 가끔 심심할 때마다 상담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찾아가 그녀를 성적으로 희롱하곤 했다. 기본적으로 방문 기록이 전부 남는 데다가 상담실이 교무실 바로 옆에 붙어 있었던 만큼 심각한 접촉이나 범죄가 일어난 적은 없었지만 어리고 마음 약한 아가씨가 그 스트레스를 오래 견디지 못한 모양이었다. 학기가 바뀌고 거의 반 년동안 비어 있었던 상담실이 새로 증축된 동관 음악실 옆으로 배정되자 옛날 그 선생을 기억하던 몇몇 쓰레기 같은 상급생은 도색 잡지에나 나올 법한 음흉한 생각을 멈추지 못하다가 이번에 오는 상담 교사는 중종계 남성이라는 소식을 듣고 조금 아쉬워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연수 다녀오시느라 아직 마이어 선생님 못 뵈었죠? 새로 오신 상담 교사세요. 이틀 전에 도착해서 오늘이 첫 근무이신데, 첫 손님부터 론즈데일 선생님네 반 학생이더라고요. 에이든이 다른 선생이나 그의 학생들에게 일일이 신경써주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인사라도 하고 오라는 교장의 상냥한 압박 때문이더라도 그곳에 수업 전에 한 번 들러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는 생각하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에이든이 교무실 문가 쪽으로 첫 발걸음을 떼었을 때 등 뒤에서 무언가 작은 것이 데구르르 굴러가다 아래로 곤두박질쳐 파열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나 그의 책상 위를 지키고 있던 동그란 유리병이 완전히 깨진 채로 얇은 리놀륨 바닥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는 산산조각이 난 병을 잠깐 바라보다가 조지의 책상 옆까지 굴러간 코르크 마개와 흩어진 유리 파편들을 주워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에이든은 데이브에게 다음 주말에 캘리포니아에 다녀올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일어섰다. 이크, 조심해요. 조지가 그의 자리 뒤로 지나가는 에이든과 부딪치지 않게 의자를 바싹 끌어당겨 앉았다.



  담당 R Meyer. 문 앞 카드에 적힌 익숙한 이름과 무겁게 노크한 뒤 문 안에서 들려오는 허락을 뜻하는 낮고 청량한 목소리에도 에이든은 별 생각이 없었다. 상담실 안으로 걸음을 떼었을 때 그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다가 그를 발견하고 마찬가지로 굳어져가는 얼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을 때야 에이든은 무언가 잘못된 것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아직 완전히 정리가 끝나지는 않았는지 자기 몸통만한 커다란 골판지 색 박스를 옮기고 있던 리하르트도 문을 열고 들어온 불청객에 대한 정보가 신경을 타고 올라가 뇌 안까지 파고들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순간적으로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먼저 달려들어 얼굴을 가격하려 한 쪽은 에이든이었다.  하필 이런 곳에서 재회할 줄이야. 에이든이 이를 갈았다. 손에 무기가 될 만한 것이라도 하나 들려있었으면 좋았을 텐디. 능력만 놓고 따지자면 방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그의 무기가 될 수 있었지만 것과 처음 보는 교실 안에서 일단 날리고 보는 알 수 없는 물건들과 아예 싸움을 각오하고 직접 품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총칼의 위협도는 그 차원이 달랐다. 그에게 질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제대로 준비된 무기도 하나 없이 같은 반류와 맞붙는 게 에이든에게도 부담이 전혀 안 될 리는 없었다.


  "꼬리가 잘려도 밖에 나다닐 수는 있었나 보지. 이런 곳까지 기어나오는 걸 보면."


  "그쪽이야말로 멀쩡히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팔 한짝이 그 꼴이 됐어도 돌아다닐 수가 있었나 봅니다."


  에이든은 그가 직접 힘줄이라도 잘라낼 기세로 옛날에 크게 찔러주었던 리하르트의 발목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단정한 구두와 긴 바지에 가려서 그의 지금 상태가 어떤 지는 알 수가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예전에 영화에서 본 바다의 색만큼이나 새파란 그의 눈을 노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함부로 마주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주 예전에 호된 값을 치르고 알게 된 사실이었다. 물론 그 뒤로 그만큼 대가를 갚아주었지만 그 정도로는 마음 편하게 리하르트의 얼굴을 보아넘길 수 없었다. 지나친 복수라는 단어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단어였다. 그것은 언제나 부족한 것이었다. 에이든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그의 얼굴에서 눈을 뗀 에이든이 그들에게서 먼 쪽 벽에 있는 책장 쪽을 보고 눈짓했다. 이미 정리가 끝난 선반 위에 곱게 놓인 도자기 티포트와 찻잔 하나가 순서대로 그의 앞에 있던 남자의 뒤통수 쪽으로 날아들었다. 에이든이 그가 아니라 조금 더 뒤쪽을 보고 있음을 알아챈 리하르트가 그의 눈이 향한 곳을 따라 보았다가 바로 고개를 숙여 처음 날아온 물체를 피했다. 새하얀 티포트가 쨍그랑 소리와 함께 반대쪽 벽에 부딪쳐 작살이 났다.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날아오는 찻잔을 보고 입술 끝을 살짝 악문 채로 그가 에이든에게 붙잡히지 않은 나머지 한 쪽 팔을 들어 방어적인 자세로 머리를 가렸다. 누가 튕기기라도 한 것처럼 빠르게 날아온 찻잔 입구 부분이 리하르트의 팔에 닿을 때 상담실 안에 울려퍼졌던 것은 둘이 예상했던 날카로운 파열음이 아니라 그를 덮는 얇고 연약한 비명소리였다.


  꺄악! 


  금방이라도 서로를 터뜨려버릴 것처럼 살벌한 눈길을 하고 있던 둘 모두 문가를 돌아보았다. 방금 상담실에 도착한 또 다른 불청객의 정체는 에이든이 담임을 맡은 반의 어느 작은 여학생 한 명이었다. 에이든은 바로 그를 알아보았다. 별다른 문제 없이 늘 뒤쪽 자리에서 무언가 열심히 수업 내용을 적어내고 있던 착하고 순진한 인간 제니퍼 매디슨이었다.  교장이 말했던 리하르트의 예약된 첫 '손님'이었던 모양이다.


  리하르트의 팔꿈치 바로 아래에서 얇게 흐르는 핏줄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여학생이 울 것 같은 얼굴로 주저앉으려 하자 에이든이 그를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뺐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팔을 뿌리친 리하르트가 적의가 가득한 손으로 그의 어깨를 세게 밀어냈다. 지금 그를 끝장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직시한 에이든이 잠깐 비틀거렸던 중심을 제대로 잡고 리하르트와 제니퍼 매디슨의 얼굴을 번갈아 차례대로 한 번씩 노려보고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그가 들어왔던 문 쪽으로 걸어갔다.


  매디슨. 그가 의식적으로 리하르트의 쪽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늘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여학생의 이름을 불렀다.


  상담 끝난 다음에 교무실로 내려와. 내 자리로.


  매디슨이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그의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여기 얼마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거야. 그는 리하르트에게 그렇게 경고라도 해 주려다가 겁에 질린 매디슨의 정수리 쪽을 한 번 내려다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아직도 그 얇고 동그란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복도로 걸어나왔다. 낮은 구두굽이 단단하고 매끈한 바닥과 맞닿아 복도를 울리는 차분한 소리가 났다. 바로 두 교실 정도의 공간만큼만 떨어진 음악실 쪽에서는 막 수업이 시작되었는지 에이든이 이름을 모르는 어느 유명한 독일 작곡가의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에이든은 3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도달할 때까지 리하르트의 이름이 적힌 상담실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덜 닫힌 문틈 사이로 따뜻한 불빛과 놀란 여학생을 어르는 그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괜찮아요, 울지 말고 고개 들어봐요. 학생 이름이 뭐예요? 이 쪽을 봐요. 진정하고.













  어느 정도 그의 악명높은 성격에 적응한 학생들은 혹시나 운도 눈치도 없는 신입생이 에이든의 앞에서 그의 이름이 포함된 루머를 발설하기라도 할까 싶어 그를 (성적)학살자, 파괴범 등의 원망 어린 별명이나, 혹은 그의 성 앞 글자를 딴 미스터 L 따위의 이니셜로 줄여 부르곤 했다. 야, 어제 상담실에서 L이 갑자기 지랄하고 갔대. 어찌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퍼진 소문을 듣자마자 데이브는 신이 나서 에이든에게 자초지종을 묻기도 전에 바로 상담실 예약 신청란에 이름을 적었다. 새로 온 상담교사에 대한 궁금증과 첫 날 있었던 소동에 대한 의문으로 이미 한참 밀려있는 예약 목록을 보고 그 위쪽에서 같은 반 애 이름을 찾아낸 데이브가 그에게 찾아가 손수 부탁했더니 그가 데이브의 예약 날짜와 자신의 것을 바꿔주었다고 했다. 그것이 얼마나 다정하고 고운 태도의 부탁이었던 지에 대해서 데이브도 그 학생도 모두 입을 다물었다. 원하는 것을 얻은 데이브는 바로 다음 주 월요일에 오전 수업 시간에 에이든이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엎어져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저 이번 교시 상담실 예약했어요.'하고는 의자에 걸어놓은 교복 자켓도 챙기지 않은 채로 잽싸게 달려가버렸다. 아침부터 에이든이 상담실이란 단어를 들은 그 날 나머지 수업이 얼마나 싸늘하게 진행되었을 지는 뻔한 일이었다. 정오가 조금 지난 점심 시간이 되서야 그 남자가 줬다는 오렌지 주스와 쿠키 하나씩을 입에 문 채로 돌아와서 데이브가 제일 처음 꺼낸 말이 "착하고 좋은 사람인데, 왜 그랬어요." 하는 속 긁는 발언이었다. "하긴, 선생님은 나쁜 놈이니까 좋은 사람은 싫어하죠?"


  "뱀이야. 인간이 아니고."


  "아. 어쩐지 안 먹히더라."


  썼어? 언제나보다 배로 날이 서고 신경질적인 물음에 데이브가 대답했다. 시도는 해봤죠. 조금 자존심이 상한 듯 부루퉁한 목소리로 돌아오는 대답이 잘 굴러가지 못했던 결과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아는 사이인데요? 안 좋게 아는 사이. 평소라면 들은 척도 안 했을 질문에 저렇게 단칼로 돌아오는 걸 보니 여기서 다시 만난 게 어지간히 기분이 나쁜 일인가 싶어서 데이브가 입을 다물었다. 우리 담임 선생님이랑 아는 사이예요? 그의 담임이 누구인지 물었을 때 데이브가 쿠키를 우물거리던 입으로 론즈데일이라고 대답하자마자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던 상담실의 남자를 그는 기억해냈다. 데이브가 네모난 음료수 팩 안에 든 공기까지 전부 들이킬 기세로 빨대를 세게 쪽쪽 빨았다.



  뱀. 독니. 데이브가 한참동안 속으로 혼자 무언가 생각하면서 텅 빈 음료수 팩은 버린 채로 거기 꽂혀있던 남은 하얀 빨대 끝만 입에 문 채 아무 말 없이 잘근잘근 씹다가 이내 옥상 바닥에 뱉고는 씩 웃었다. 이미 다 구겨진 음료수 팩과 송곳니 끝으로 짓뭉개져 너덜너덜해진 빨대를 조금 전 에이든이 발로 담배 꽁초 지지던 것과 정확히 같은 자세로 밟아 뭉개며 데이브가 말했다. 좋아요.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이 그 나이대의 학생답게 순진하고 상냥했다. 뱀새끼 저 빨대 꼴로 만들어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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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티니. 에이든이 차분한 목소리로 잔을 다시 한 번 불렀다. 한참의 침묵 속에서 새 잔에 가득한 마티니를 모두 비우고 나서야 그는 말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네가 지금 학생이랑 자겠다고? 아이작에게 그것이 그저 한 순간의 불장난에 불과한 것이든 마음 깊숙히 파고든 애정에 기반한 것이든 그는 이해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의 안에서 학생은 늘 두 분류로 나뉘었다.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멍청한 부류와, 항상 도움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멍청한 부류였다. 어린애들이란 모두 그랬다. 학생. 에이든의 기준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애인을 찾고 싶다면 학교 밖에서 찾아. 아이작. 래틀이 잔에 남은 새까만 러시아를 들이켰다. 친구, 선배, 동료, 협력자, 그 어떤 이름을 붙이든 상관없었다. 에이든이 아이작에게 해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충고일 터였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작 래틀이 학교에서 떠나는 것은 에이든이 바라던 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으로 나오자 서늘한 밤바람이 알콜로 인해 조금 쨍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이미 차갑게 식은 벤틀리의 본넷 앞에 살짝 기대서서 몇 시간 전부터 일정 간격을 두고 계속 진동했던 휴대폰 끝을 꺼냈다. 액정 위에서 익숙한 이름을 인식한 그가 통화 버튼을 누르고 낮은 인사가 들려오기도 전에 자기가 할 말부터 내뱉었다.



  래틀이 정학 서류에 사인했어. 2주 동안 학교 나오지 말고 집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어.






graphic







  데이브 그레이스톤은 신입생 시절 처음 교문 앞에 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여러 의미로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적당히 순진한 얼굴과 6피트 하고도 셋과 반 인치는 더해야 가늠할 수 있는 거대한 몸집과 위압이 그에게는 있었고, 힘과 권력, 부, 허세, 유머러스함, 협박, 가슴 안에 품은 독기와, 마지막으로 추수감사절 테이블에 올라온 잘 익은 칠면조 위에 마지막으로 살짝 뿌린 허브 솔트처럼 정점을 찍은 약간의 유전적 양념까지. 그 나이대의 학생들이 끌릴 법한 조건을 모두 새 교복 품속에 잘 갈무리한 채로 운동장에 서서 신입생 회장이 부르는 입학선서를 따라읊은 그는 첫 3월이 끝나기도 학생들 사이에 숨어든 미묘하지만 확실한 서열 그 최상위권에 시원하게 드러누워 있는 자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학생부의 악몽 아이작 래틀과 그의 당구 큐대 끝이 그를 주시하기 시작한 것은 뻔한 일이었다.


  Hi. 입학식이 끝난 뒤 짙은 밤색 머리의 신입생 하나가 에이든의 책상 앞을 찾아왔다. 저 몰라요? 나는 선생님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에이든이 고개를 들었다.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가 대꾸해줄 가치도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서랍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생활기록부를 찾는 데 집중하기 시작하자 학생이 미묘한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로 바쁜 에이든의 손끝을 내려다보다가 불쑥 말했다. 그레이스톤이예요. 에이든의 손이 멈췄다. 아빠가 선물 가져가랬는데. 다 큰 남학생이 가지고 다니기엔 조금 부끄러워 보일 앙증맞은 사이즈의 유리병을 고이 책상 옆에 놓아두는 것을 에이든은 막을 수가 없었다.




  "래틀 선생님."


  그의 서식지와도 같은 계도실 안에서는 둘 사이의 그래프가 더 완만하게 흘러갔다. 에이든은 중세 시절 만연했던 성의 지하 고문실을 늘 떠올리게 하는 아이작의 계도실 문을 두드릴 때마다 그곳이 나무가 듬성한 초원에서도 늘씬하게 달릴 힘을 가진 맹수에게는 버거울 정도로 좁고 차가운 공간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를 입밖에 낼 정도로 그가 다정한 성격은 아니었다. 에이든은 본관 3층 교무실 프린터기 두 번째 칸 아래에서 평생을 묵어있다가 30분 전에 처음으로 빛을 보았을 게 확실한 A4용지 몇 장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분명히 한참 전에 다 말랐을 잉크 냄새가 여기서는 다시 나는 것 같았다.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상태로 한참을 이어져온 둘의 사이만큼이나 빛 바랜 색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전에 말했던 학생 목록입니다."


  그들의 공생 관계에 영향을 끼치던 변수들은 이미 변수가 아니게 된 지 오래였다. 둘 사이에 이어진 끈은 약간의 이해관계라도 얽히면 바로 끊어질 것처럼 보일 정도로 너덜했지만 그만큼 관심을 가지는 이도, 일부러 흔들어보려 다가서는 이도 없었다. 복도를 지나가다 마주쳤을 때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은 표정으로 눈인사라도 하려 치면 언제나 의외라는 수군거림이 따라붙었다. 탈곡기랑 파괴범이랑 친해? 아닐걸. 애초에 교무실도 다르잖아. 솔직히 둘이 친하게 생겼냐. 낡고 느슨하게 늘어져있던 이름 없는 공생 안에서도 서로 불가침한 영역은 존재했다. 이를테면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은 에이든의 교실이 그 중 하나였다. 아이작 래틀이 에이든의 교실에 무단으로 침입해서 데이브의 머리채를 잡은 순간, 그들 사이에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변수가 끼어들었다. 







  14일의 정학 처분 이후 오랜만에 정시에 등교한 데이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기분이 좋아보였고, 그 어느 때보다도 시비를 걸고 싶어 안달이 난 듯했다. 데이브. 처음으로 정학 먹었다가 온 기분이 어때. 머리를 갖가지 이상한 색으로 물들인 그의 친구가 데이브의 어깨를 툭툭 치며 시시덕거렸다. "아주 좋아. 완벽한데." 데이브가 교문 앞에 선 아이작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청소년이라는 법적 나이의 테두리를 아직 벗어나지 못한 어린 짐승들은 그들이 원하는 만큼 살기를 참아낼 수는 있었어도 순간적으로 치밀어오르는 적의까지 완전히 숨기기에는 너무 혈기와 자신감이 넘쳤다. 데이브는 아이작의 앞을 지나가면서 평범한 학생들이 아침에 흔히 그러는 것처럼 미소를 지어보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이작의 눈에 비치기에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었다.



  폭력이 아니고. 난 그냥 손 좀 봐줬을 뿐이예요. 선생님도 클락슨을 싫어했잖아요. 걘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는 지 파악을 못 하고 있어요. 래틀이 안 막았으면 그 다음에 완전히 골로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솔직히 래틀도 클락슨은 별로였을걸요.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모두 교실 안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오후였다. 서서히 저물 준비를 하는 해를 보다가 에이든이 이미 새하얗게 탄 담뱃재를 옥상 저 아래로 살짝 털고 데이브의 말을 고쳐주었다. "래틀 선생님." "선생님이든 뭐든." 몰라요. 나 정학 기록 때문에 대학 못 가면 어쩌지. 데이브가 심드렁하고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난간에 기대앉은 채 휴대용 게임기의 버튼을 차례대로 눌렀다. 에이든이 게임기 옆면을 잡은 데이브의 깨끗한 손가락을 주시했다. 여기서 평소처럼 그의 옆에 쪼그려 앉아 같이 하얀 연기를 뻑뻑 뿜어낸다고 해도 에이든이 그를 딱히 제지하거나 하지는 않았겠지만 다행히도 누군가 그에게 술담배는 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마다 데이브는 나 체육 특기생이야, 하고 대답하고 불량학생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특유의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곤 했다. 그것보다 조금 더 건강하고 폭력적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그는 학교에서 더 많이 찾아낼 능력이 있었다. 오른쪽으로 가면서 네모, 세모, 다시 네모, 동그라미. X버튼.


  "얌전히 굴어."


  데이브가 주인공이 죽었다는 메시지를 띄운 게임기 화면을 보다가 전원 버튼을 길게 누르면서 에이든의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알았어요. 학생들 안에서도 그렇듯 둘 사이에서도 꺼지지 않는 힘의 관계가 있었다. 아이작 래틀과의 수평적이고 미묘한 공생과는 달리 그 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에이든이 훨씬 우위에서 그를 컨트롤할 수 있는 대신 그것은 견고한 만큼 팽팽히 당기고 있는 줄다리기와도 같았다. 먼저 힘을 풀어내는 사람이 땅으로 곤두박질 치는 경기였다. 에이든이 편히 손을 놓을 수 없는 단 한 가지 이유를 데이브는 가지고 있었다.


  선배가 왜 데이브를 감싸 도는지 이해를 못하겠어. 래틀의 느릿한 목소리가 에이든의 깊은 바다에서 불쑥 솟아올랐다. 데이브가 새까맣고 깨끗한 게임기 화면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정학 먹어서 학교 안 나온 동안 매일 병원에 갔어요.


  "우리 아빠가 지금 좀 많이 위독한데. 의사 선생님이 곧 언제 돌아가실 지 모르는 수준이랬어요."


  에이든이 멜을 찾아가지 않은 지 십 년이 넘었다. 데이브는 무슨 말을 던져야 닫힌 에이든의 입을 열게 할 수 있는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어딜 찔러야 에이든이 침묵을 지키게 할 수 있는가는 너무 정확히 잘 알고 있었다. "아빠가 죽기 전에 선생님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그랬는데." 병실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소독용 알코올 향기보다도 가볍고 희미한 웃음기가 데이브의 눈가에서는 이미 증발한 상태였다. 지나치게 솔직한 입꼬리가 차갑게 굳었다. "선생님이 누군지 몰랐을 때 그럼 내가 두들겨 패서라도 끌고 오겠다고 했는데 아빠가 괜찮다고 했어요." 그게 2년도 더 전의 일이었는데.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왜 안 와요? 원망과 분노와 위협의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짐승의 눈이었다.













  원래 그러했던 것보다 훨씬 늦은,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각에서야 구름 내려앉은 탁한 밤하늘보다 새까만 벤틀리가 바 앞에 멈춰섰을 때 케인즈는 잔을 닦던 손을 멈추고 당신 친구가 왔다는 표시로 아이작이 앉은 테이블 앞을 톡톡 두드려 주었다. 마티니, 드라이하게. 자리에 앉은 에이든이 언제나 그렇듯이 인사 대신 첫 잔의 주문으로 케인즈만이 가끔 자를 수 있었던 둘의 조용한 대화를 시작했다. 에이든이 투명한 마티니가 든 잔을 기울이며 그 안에 들어있던 그의 눈과 닮은 색의 가니쉬 올리브 한 알이 흔들리는 것을 빤히 보다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한동안 얌전하게 굴 거야." 



  누구를 뜻했던 것인지는 굳이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래틀." 그는 무감정한 시선으로 데이브의 것보다 훨씬 진하고 깊은 아이작의 눈을 본다. "아이작." 그는 반쯤 남은 마티니를 입 끝으로 모조리 흘려넣고 말을 이었다. 네가 이해해야 해. 이번만큼은. 오늘은 아이작이 대답하지 않을 차례였다. 누군가 다시 한 번 길게 찢고 지나간 것처럼 너덜하게 걸레짝이 된 완만한 상관관계가 몇 주 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무 일이 없었단 표정으로 호선을 그리며 좌표 위에 걸려있었다. 마티니. 어느새 다가온 케인즈의 단정한 손이 눈에 닿자 아이작은 고개를 틀어 허전한 자신의 잔 안을 보다가 케인즈를 놓치기 전에 그의 말에 덧붙인다. 블랙 러시안도 같이. 달그락 달그락. 케인즈가 선반에서 얇은 칵테일 글라스와 베르무트 병을 꺼내는 소리가 잠시 말을 멈춘 둘 사이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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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제대로 열리지 않는 문을 거의 부수다시피 몸으로 밀어내고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한 번도 정리하지 않았는지 아직도 그 날 아침에 벗어던지고 나온 게 분명한 옷가지가 의자 위에 아무렇게나 걸려있었다. 그는 아직도 가지런한 상태의 책장과 십 년 동안 한 번도 작동한 적이 없었을 구식 라디오 카세트 버튼을 하나하나씩 눌러보았다. 딸깍. 딸깍. 되감기, 빨리감기, 재생, 일시정지, 마지막으로 정지 버튼을 누르자 쑥 내려가 있던 재생과 일시정지 버튼이 동시에 탁 소리와 함께 제자리로 튀어올라 돌아왔다. 단조롭게 딸각거리는 소리는 선명했지만 한참 전에 끊긴 전기에 카세트가 제대로 돌아갈 리는 없었다. 바깥으로 담쟁이 덩굴이, 안으로는 먼지가 잔뜩 낀 창문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어두운 집 안을 비추었다. 그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왼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의 통화 목록을 열어 제일 위에 있던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네, 말씀하세요. 아까 전에도 들었던 얇고 사무적인 목소리가 수화기를 넘어와 데이브의 귀에 닿았다. 30분 전에 전화했던 데이브인데요. 아까 말한 대로 처리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입금은 지금 바로 해드릴 수 있어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무언가 키보드를 타닥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서류 상으로는 멜 그레이스톤 씨의 소유로 되어있는데요, 이 주소가 맞습니까? 뻑뻑한 침실 문고리에 잔뜩 쌓인 새하얀 먼지를 살짝 불어내며 데이브가 대답했다.


  네.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아요. 지금은 아무도 안 살거든요.




  방화




  데이브가 곤죽이 된 채로 널부러져 있는 레이너의 얼굴을 발로 툭툭 쳤다. 너무 심했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깨진 채 레이너의 몸으로 거처를 옮긴 창문 유리를 바라보다 그의 팔에도 박힌 손바닥만한 유리 한 조각을 뽑아냈다. 나 없는 쪽 창문으로 깨서 좀 보냈으면 안 돼요? 나 이거 병원비 줘야해요, 에이든. 깊게 파고들어간 것은 아니었는지 상처가 벌어진 자리에서 피가 살짝 번지다 멈추었다.

  "망할 새끼. 능력 있으면 의뢰인지 뭔지나 받아서 처벌어먹고 살지, 갚지도 못할 돈을 빌려놓고 여기 와서 지랄이야. 일찍 뒤지려고."

  데이브가 어색한 분위기를 가르며 레이너의 얼굴에도 스쳐박힌 얇은 유리 조각들을 하나하나 뽑아내주었다. 그는 복도에서 방황하고 있을 조지를 불러서 또 청소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에이든이 피를 뚝뚝 흘리는 레이너와 그를 일으켜 세우려는 데이브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레이너가 무엇을 시도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절벽 위에 선 자들의 생각을 이해해주려고 노력한 적은 없었다. 둘은 의도적으로 그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서로 물어보지 않았다. 데이브 본인이 겪은 것은 시각보다는 청각의 조종에 가까웠다. 마녀들이 머리 헤집을 때 특유의 윙윙대는 귀 울리는 감각과 함께 마지막으로 젊은 에이든의 목소리가 말했다. 네 아버지가.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멜이 나에게도 똑같은 제안을 했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쨍그랑 하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팔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에 정신이 번쩍 들은 데이브는 난폭하게 깨진 유리와 사무실 안에 멍청하게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생생하게 남은 목소리에 비해 그가 무슨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그의 옛날 집과 같이 뿌옇게 먼지가 가라앉은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데이브의 정신은 전혀 건강하지 않은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 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낙천적이고 온전한 상태였다. 이상한 꿈도, 환각도, 플래시백도, 그 어떠한 종류의 괴로움도 이때까지 겪어본 적이 없었다. 데이브가 그런 식으로는 처음 겪는 충격의 후유증을 떨쳐내려는 듯이 머리를 두어 번 흔들고는 일어섰다. 이 쯤 되면 한 마디는 대꾸해줄 때가 되었는데. 에이든은 평소보다도 말을 아끼고 있었다. "그걸로 유리도 깰 수 있는지는 몰랐는데. 아무리 급했어도 사람 몸을 이렇게 만들어놓으면 블리스가 싫어할 거예요." "……."


  그는 문득 에이든이 무엇을 보았을지 궁금해졌다.


  "의도한 정도로만 날아간 거 맞아요?"


  에이든이 대답하지 않았다.





  시나 박사님한테 다시 전화 왔었어요. 종말이 어쩌고가 무슨 소리예요? 당신 죽어요?


  뻔뻔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본 지 삼일 째의 일이었다.

  이런 짓을 평생 해오면서 고작 경고 한두 번에 무서워서 몸을 사린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그들이 받은 돈에서는 언제나 떨칠 수 없는 처절하고 끈적한 원한과 증오가 묻어났다. 정작 무서워해야 할 것은 좀 더 가깝고 어두운 곳에 있는 것들이었다. 사람들이 넘겨준 지폐 다발을 손으로 만질 때마다 데이브는 그 안에서 속삭이는 수많은 감정과 욕망들, 종이 냄새가 뒤섞여 나는 향기에서 그가 가진 것과 같은 어떤 것을 맡을 수 있었다. 가장 침착하고 어둡게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그 무엇보다 뜨겁게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종류였다. 아주 옛날 그의 안에서 순간적으로 차고 올라왔던 것보다 훨씬 능숙하게 정제되어 있었지만 그만큼 더 날카롭고 깨끗하게 벼려진 채로 묵직하고 단단하게 마음 한 켠에서 웅크려 앉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것이 데이브의 입술 끝을 톡톡 두드리며 우아하게 말했다. 그렇게 내버려두면 안 되지. 네가 할 일이 있잖아. 데이브가 착실하게 그의 말을 들으며 에이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직접 죽이고 싶어요? 이유를 알 수 없이 평소보다 훨씬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마녀잖아요. 얘는. 데이브가 흙더미가 묻은 운동화 끝을 레이너의 자켓 위에 벅벅 닦았다. 아니, 블리스에게 넘겨. 어제 들었던 명령과 비슷한 어조였다. 그 어제도 그 어제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아마 내일도 언제나와 같이 그런 방식으로 말할 것이다. 

  데이브가 아직 숨이 붙어있는 마녀 레이너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며 사무실을 나섰을 때였다. 야, 이번엔 뭐 깨졌어? 미친! 너 피 나! 복도 안쪽에 앉아있던 조지가 제일 먼저 달려와 피가 번진 그의 팔뚝을 보며 말을 걸어주었다. 뭐 깼어? 왜 너까지 다쳤어? 그 새끼가 결국 일 쳤어? 너 나가래?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걸, 조지." 데이브가 씩 웃었다. "나라면 내 앞에서 입조심 할 거야. 옛날처럼 다리 작살나고 싶지 않으면." 조지가 그의 눈치를 보며 무의식적으로 왼쪽 다리를 다른 쪽의 뒤로 숨기듯이 뒷걸음질쳤다. 조지는 2년 전에 돈을 몰래 빼돌리다 현장에서 바로 그에게 들통난 적이 있었다. 데이브는 그의 다리뼈를 두 동강으로 만들어준 후에 차액을 모두 돌려놓으면 에이든에게는 알리지 않겠다고 말해주었고, 조지는 눈물과 코피를 동시에 흘리는 얼굴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내가 얼마나 착한데. 팔다리에 온통 붕대를 감은 채로 병원에 누워 있던 조지의 입에 손수 담배를 물려주며 데이브가 말했다. 난 누구랑 달리 적어도 경고는 해 주잖아, 이렇게. 그렇지? 그래서 지금 또 다른 경고를 하나 해주려고 하는데. 하나 들어볼래? 대신 에이든 앞에서는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는데. 장난스러운 웃음 사이에서 고개를 내미는 협박을 힘 약한 조지가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후덥지근하게 가라앉은 지하주차장 아래에서 데이브는 축 늘어져 무거운 레이너를 트렁크 안으로 굴려넣고 문을 닫았다. 한숨을 내쉬며 땀을 훔친 그가 운전석에 올라앉아 휴대폰을 꺼내 2번 버튼을 길게 눌렀다. 연결음이 세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 소리가 났다. "지금 바로 출발할 거예요. 마음 바뀌면 블리스한테 넘기기 전까지 전화해요." 그 역시 어제와 다를 것 없는 밝고 유쾌한 목소리였다. "에이든이 죽으면 안 되잖아요." 진심이었다.


  블리스가 언제나 그렇듯이 다정하고 기쁜 얼굴로 그를 맞았다. 닥터 샌더스*! 데이브가 웃으며 블리스의 동그란 금테 안경 근처를 장난스럽게 톡톡 두드려주었다. 그가 겨우 정신을 차리려는 레이너의 머리를 세게 쳐서 다시 잠재운 채로 블리스의 손에 완전히 넘겨주기 전까지 에이든에게선 아무 연락이 없었다. 대신 한참 뒤에 걸려온 것은 친구의 전화였다. 안녕, 데이브. 오랜만이지.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Evening, Dave. 저녁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오늘 11시, 오스본 거리 46번지. 에안이 불러준 주소를 들었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활활 타오르는 그의 옛날 집을 차에서 내려 직접 보는 것이 그가 예상했던 것만큼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네가 구경하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했지. 너무 늦어서 이미 반쯤 탔지만..." 에안이 말끝을 흐리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가 무언가를 알고 데이브를 불렀을 리는 없었다. 그저 중간 단계를 통해서 의뢰가 들어왔고, 괜찮은 기회다 싶어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데이브는 그렇게 믿었다. 그는 칠이 다 벗겨진 울타리가 삐걱대는 마당을 가로질러 에안의 옆에 섰다. 

  "너 여기 어딘지 알고 의뢰 받은 거야?"

  "여기가 왜? 오스본 거리?"

  "아냐. 됐어."

  바람도 안 부는 뜨거운 여름밤 아래에서 새하얀 집이 별처럼 불타올랐다. 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데이브는 다 타들어가는 현관 쪽을 보았고, 에안은 그 옆에 위태하게 선 기둥을 보았다. 오늘이 무슨 날이지. 화요일. 버스 끊겼을 것 같은데, 차 안 가져 왔으면 돌아가는 길에 태워줄까. 그래. 영양가도 집중도 없는 대화만 잠시 오갔을 뿐이었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그가 직접 열고 들어갔던 현관문이 뼈대만 남아 계단 위로 툭 굴러떨어졌다. 옛날에는 저 좁은 문으로 잔디 깎는 기계를 꺼내겠다고 끙끙대던 때가 있었는데. 팬케이크를 만들어준답시고 부엌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던 그의 아버지가 웃으며 걸어나와 문 틈 사이를 지나갈 수 있게 기계 뒤편으로 길게 튀어나온 손잡이 부분을 직접 접어주었다. 차가운 금속 케이스 위로 새하얀 밀가루가 묻었었다. 데이브는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오늘 아침에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가져나온 작고 네모난 무언가가 손끝 아래로 닿았다. 마음 속에 웅크리고 있던 새까만 것이 때가 왔음을 알고 팔을 뻗어 그 옆에 있던 날카로운 칼을 쥐었다. 옆에서 꿈지럭대는 손을 보고 에안이 그게 뭐냐고 물었다. 데이브가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며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라이터. 너 담배 안 피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러게, 너 가질래? 아니. 됐어. 만약 그 때 에안이 거절하지 않았어도 과연 자신이 정말 그걸 넘겨줄 수 있었는지 데이브는 알 수 없었다.


  몇 발치 떨어진 곳에서 지붕을 받치고 있던 왼쪽 목재 기둥 하나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위험하니까 조금 물러설까. 에안이 데이브를 보았다. 그는 이제 듣지 않고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생이 끊어져가는 건물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데이브? 에안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부르자 데이브가 입을 열었다. 에안, 내가 옛날에 말했던 것 기억나지? 내가 할 일이 있는데, 그게 다 끝나면 날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한 것 말야. 그는 불길만큼이나 뜨거운 눈으로 앞을 주시했다. 결국엔 그가 넘길 수 없었던 과거가 타오르고 있었다. 새파란 눈에 붉은 불길이 치솟았다. 에안이 그의 마음에 다시 불을 질렀다. 그의 가슴 안에서 단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던 불씨가 핏줄을 타고 손끝으로 옮겨붙어 마지막으로 빛을 내며 크게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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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




 사람을 죽이기로 했다.




 보이지도 않을 바깥세상에서는 새까맣던 하늘 끄트머리부터 아래로 가라앉는 온도만큼이나 파랗게 밝아오기 시작할 서늘한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흐린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침대 앞을 떠나 책상 끝을 더듬어 서랍을 열었다. 까끌까끌한 나무 책상 서랍 바닥을 손으로 덮을 때마다 꿈속에서 본 바닥도 함께 만져지는 것 같았다. 아. 작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직 있다. 손끝에 닿는 차갑게 식은 단단한 붓대를 아무렇게나 움켜쥐고 책상 앞에 주저앉았다. 그림자가 져 어두운 바닥이 반쯤 잠긴 다리를 한없이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서랍 안에서 이상한 각도로 꺾인 손목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머릿속이 텅 빈 채로 앉아있다가 손에서 이미 반쯤 굴러나간 붓을 다시 잡고 꺼내 바닥 위에 내려놓았다. 반질반질하게 마감된 붓대 끝과 그 옆으로 곱게 모셔놓은 벼루가 아무렇게나 부딪치면서 덜그럭하는 소리를 냈지만 어디에 무슨 흠집이 나든 신경 쓸 겨를이 아니었다. 그 다음엔 벼루, 먹, 문진을 잡히는 순서대로 집어 끌어내고 허겁지겁 다음 서랍을 열어 곱게 잘 말아놓은 화선지 한 장을 뜯어낼 듯이 풀어냈다. 바닥에 펼치는 순간 얇게 늘어진 종이 끝자락이 처참하게 찢겨나간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무릎이 바닥과 부딪치며 산산이 조각나는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물이 없었다. 먹을 손에 든 채로 텅텅 빈 벼루 옆의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한참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애초에 연적은 이곳으로 가져온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멈춘 수많은 생각들 사이에서 틈을 비집고 떠올랐다. 아직도 머리가 꿈에서 반만 깬 채로 억지로 사고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꿈에서. 꿈에서 뭘 잃었더라. 떨리는 채로 방황하는 손으로 바싹 마른 붓을 잡았다. 뭘 잃어버렸었더라.


 힘줄이 도드라져 종이 위를 짚은 하얗게 질린 손과, 그보다도 더 희게 한 점 얼룩조차 빠진 상태인 붓을 든 다른 쪽 손과, 그리고 그 사이로 길게 그림자 늘어진 아래로 단정하게 펼쳐진 얇은 종이 중앙 부분이 좀 더 짙은 색으로 방울방울 젖어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 굳게 닫힌 문을 보았다. 지금 와서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내 인생에서. 잃어버릴 수는.




 소리 없이 방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쉬웠다. 문고리 안쪽이 자기들끼리 맞물려 돌아간 뒤 조용한 복도 위로 신발 굽이 바닥과 부딪치는 소리가 기숙사 건물을 넘어서 본관 복도까지 걸어 나오는 발걸음을 타고 귀를 두드리며 따라왔다. 평소엔 수없이 잡아왔을 손에 든 문진이 오늘따라 유달리 묵직하게 땅 속으로 팔 전체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제정신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나. 무조건 그냥 아무나 처음 만나는 애를.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팔이 떨어질 것 같았다.


 교무실에 가려진 코너를 지나 계단 쪽으로 첫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 그림자 없는 낯익은 사람의 인영을 보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다시 코너 뒤에 몸을 숨기려다가도 자연스럽게 걸음이 굳었다. 아.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가 다시 풀었다. 아니… 아니었다. 아무나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이 정도로 아무나 만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위에서 막 내려온 상대방도 방향을 틀려다 이쪽을 발견하고 잠시 계단참 아래에서 멈춘 채 누군가 화면을 정지시킨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정적이.


 "........"


 꾹 눌러쓴 모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 유령의 눈길이 물 흐르듯이 내 손에 들린 문진으로 옮아갔다가, 다시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한참을 양쪽 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침묵이 길어진 만큼 모든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이미 한 번 지난 길을 되짚어 보는 것처럼 고개를 조금 숙이더니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잠깐 다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어디 가려는 중이었어. 늦은 시간에. 잠시 후에 몇 걸음 앞에서 들려오는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가 애써 상황을 어색하게나마 포장하려는 것처럼 처음으로 공기를 덮었다.


 “백우진.”


 그래서 나는 떨리는 손으로 포장을 억지로 잡아 뜯었다.


 “위에 누구 있어.”


 얼굴의 반을 가둬놓은 것처럼 끝까지 눌러쓴 모자 끝이 잠깐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을 향했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길게 이어진 침묵이 뭘 뜻하고 싶었던 건지 의중을 알 수 없었다. 거기서 다시 한참 동안 무겁게 서로를 보고만 있다가 차라리 그냥 이대로 지나칠까 하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가 되어서야 결국 나온 대답이 전혀 다른 말이었다.


 “나갈 생각이야?”

 “…그래.”

 “…….”

 “그러려면 네가 다른 애들한테 쓸데없는 말은 안 하는 게 좋겠지. 들키면 안 되니까. 너처럼 멍청하게 쓸데없는 증거 같은 거 안 남길 거거든.”


 짙게 그늘진 그림자 아래로 보이는 침울한 입가가 조금 굳는 것 같았다. 누가 테이프로 붙여놓은 것처럼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문진 모서리가 꽉 조인 손가락 마디 사이를 아프게 파고들었다.


 “넌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하잖아. 죽었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이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몇 시간 동안을 아무 대화 없이 참고 있었는데 막상 곱지도 않은 말이 한 번 터져나가니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로 내뱉는 비난인 걸 스스로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계속 입 다물고 있으라고. 죽은 애 답게. 허한 속을 의미 없는 비난으로라도 채워야 할 것 같았다. 순식간에 차오른 공간이 썰물처럼 급하게 텅 비어버렸다.


  “...그것까지 약속해 줄 순 없어.”


 서늘하고 차분한 기운이 이상할 정도로 무겁게 처진 어깨에 닿아 몸을 움츠렸다. 사방이 막힌 공간이었는데도 어디서 싸늘하게 식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유달리 추웠다. 내가 다른 아이들한테까지 아무 말도 못 하게 하려면…. 네가 돌아가는 길에 내 제단에 해를 가하든지. 알아서 해야 할 거야. 복도 조명을 등져서 앞으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 속에서 나오는 조용한 속삭임이 어떤 기분을 품은 채로 나오고 있는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다만 네 말대로 나는 죽은 사람이니까.”


 죽은 사람.


 “지금 네가 하려는 일에 아무 영향도 못 끼치는 건 맞아.”


 그렇게 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실패한 자들. 손가락 사이에 걸린 단단한 문진 끝에 남은 인생 전부를 건 도박과도 같았다. 이대로 아무 일 없었던 것으로 하고 방으로 돌아가서 어떻게든 나갈 수 있는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악취미에 진저리나서 살인을 저지를 것이고, 그러면 내일 오겠다고 기약하고 떠나버렸던 그 끔찍한 약속도 멈출 것이고, 다시 며칠 동안 기다리고 있으면 늦게라도 어른들이 건물로 들이닥치지 않을 확률이 얼마나 될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로 조금 전 꿈에서 봤던 것처럼. 손이 죽은 사람처럼 미리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백우진은 그 말을 끝으로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령일 뿐이라고 무시하고 그대로 계단을 올라가 아무나 누군가의 머리를 내려쳐야 했는데. 잔뜩 굳은 발이 발등에 커다란 못을 박아놓은 것처럼 아주 약간을 움찔대다가 계속 제자리에 멈춰 서고는 했다. 차라리 누군가 나타나서 등 뒤에서 앞으로 밀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떻게든 한 발자국만 딛고 나면 관성에 밀려나가는 것처럼 혼자서 다음 발을, 그리고 다음 걸음을, 그렇게 그대로 정말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떠나지 못한 복도보다 한참을 더 길게 이어진 길 끝에 아는 얼굴들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매일 보는 친구에게까지 어쩔 수 없이 등 뒤에서 칼을 꽂고. 그렇게까지 하고도 결국 같이 사라지는 것으로 끝난…. 목숨들이.


 “...너 때문에 이 꼴이 시작된 건 알고 있냐? 네가… 네가 처음에 안나예를… 그렇게 해서.”

 “……”


 대답이 없었다.


 “너 같은 놈들이 병신같이 시키는 대로 넘어가주니까 애들이 죽고, 계속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이 튀어나오면서 또 자기들끼리 죽이고.”


 말도 안 되는 비난이란 걸 알고 있었는데 아무 부정을 안 하고 조용하게 기다리는 점이 더 사람을 울컥하고 차오르게 하는 면이 있었다. 차라리 그렇지 않다고 화라도 냈었으면.


 “무슨 정신병자야? 사람을 죽여?”


 아니라고 말해주었으면 했었다. 이 상황에선 전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이 모든 것이 정당한 것이었다고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도 들어야 여기서 어떻게든 힘을 얻어서 앞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 잘못이 없다고. 그 침착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들어야 오늘 내가 저지를 일까지 한꺼번에 변명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남에게 짐을 지우고 싶어서.


 “맞아.”


 소리 없는 작은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처럼.


 “내가…….”


 바싹 마른 것 같은 입을 잠시 다물었다가.


 “처음 시작했어. 맞는 말이야.”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알 수 없을 익숙하지 못한 후회가 죽은 유령의 어깨 위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알아.”


 아플 정도로 힘을 놓지 않고 있던 주먹을 천천히 폈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꽉 쥐어서 달아오른 손바닥이 이미 반쯤 난도질당해 새빨갛게 상처만 남은 것처럼 환상을 일으켰다. 꿈에서 본 것과 비슷한 손이었다.


 “그래…. 네가… 네가 먼저 시작해서 여기까지… 너 때문에….”


 간신히 들어 올리는 입술 안으로 처참할 정도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떻게든 뻣뻣하게 세우던 고개가 완전히 아래를 향함과 동시에 힘이 빠져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이제 분간도 가지 않는 상태였다. 네가… 네가 시작해서. 처참하게 갈라진 목소리에 이상한 것들이 섞여들었다. 너 때문에… 전부….


 누가 수없이 많은 바늘로 눈가를 찌르는 것같이 눈이 뜨거워서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그림에 물을 끼얹은 것처럼 시야 속에서 흐리게 번지기 시작한 얼음장 같은 바닥 위로 어디서 흘러나왔을지 모를 복잡하고 절망적인 감정들이 굴러가다 턱 끝에서 뚝뚝 떨어졌다. 조금 전의 데자뷰를 보는 듯했다. 백우진. 목이 따가웠다. 백우진. 나는… 나가서 우리 누나도 만나야 하고, 다른 애들처럼 학교도 다니고, 공부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도 하고, 돈도 벌고, 그림도, 그림도 계속 그려야 해서…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이미 한참 전에 저 아래로 가라앉은 고개를 다시 들 용기가 없었다. 내가…


 사람을 죽이기로….


 사람을….




 손에서 떨어뜨린 것이 묵직하게 바닥과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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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림자






 선이 그어진다. 먹을 머금은 손가락 반 마디만한 솔이 달린 붓 끝을 놀릴 때마다 얇은 종이 위로는 붓자국 끝이 의연하게 번져나가는 문장들이 이어졌다. 예의는 차리되 졸렬해보이지 않게. 침묵 속에서 세 번째 문장이 완성되었을 때 전前 예조참의 예선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공영, 들었소? 내 이런 식으로 파직당할 줄이야 몰랐는데, 이제 믿을 곳은 공영밖에 없소. 공영이 그의 애달은 목소리가 듣기 싫다는 듯이 얇게 눈을 내리깐 채로 손목 아래만을 바삐 움직였다. 벼루 귀퉁이에 바르게 갈린 먹물 만큼이나 짙은 도포 소매 끝자락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가 났다. 한참 뒤에 예선이 다시 입을 열려 할 때가 되어야 공영은 탁자 한 켠에 놓인 두어 번 접혀 봉해진 얇은 서찰 하나를 턱짓하며 말한다.



 "받으시오."


 "무어요?"



 쓸데없이 묻지 말고 직접 보시오. 그새 먹을 한 번 더 빨아들인 붓 아래로 네 번째 문장이 시작되고 있었다. 한참을 눈동자를 굴리던 예선이 눈을 깜박이며 되물었다. 밀서 아니오. 공영은 쉬이 대답하지 않았다.

 


 "부원군께서는 나를 얕보시는 모양이시군. 그렇지 않다면 이리 중요한 것을 고작 첩자 하나에게 맡기셨을 리가 없소."


 "공영, 내 예전부터 말씀드리려 했던 것인데 제발 함부로 손을 뻗어대고 다니지 마시오. 부원군은 더러운 수도 마다하지 않소. 시기가 흉흉하니 지금은 끌어당길 때가 아니고 있는 것을 움켜쥐어야 할 때요."


 "나는 움켜쥐는 것에 필요 이상으로 능숙하오. 예선, 이것은 움켜쥐는 것이 맞소."



 촛대 위에서 빛을 밝히던 작은 불빛이 예선이 내쉬는 한숨에 날려 눈꼬리를 한 번 감았다 떴다. 손끝을 바삐 놀리던 공영이 예선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서찰은 일단 예선께서 지니고 계시다 적당히 때를 봐서 사나흘 안에 참판 댁에 가져다 주시오. 예선은 굳게 닫힌 문지방 쪽을 한 번 힐끔 보더니 그게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하고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



 "조금 손을 보아야 쓸 수 있을 것이오. 내 잘 알지는 못하나 이조참판 댁에 이러한 문서 고치는 것에 능통하다 일컬어지는 자가 있다 들었소."


 "참판께서는 이제 손을 떼겠다 하지 않으셨소?"


 "어찌 그토록 사람을 부릴 줄 모르니 그대 또한 참으로 애석하오. 내 참판께서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려는 기미를 보인 것도 알고 있었소."



 공영이 붓을 내려놓았다.



 "참판께 이미 담근 손을 빼내려면 그 손이라도 잘라내어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고 전하시오."









 예선은 결국 고이 접힌 두 장의 서찰을 가지고 길을 나서게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그에게 공영은 눈길도 주지 않고 인사 대신 덧붙임만 전하였다. 예선은 이제 참의 직에서 물러나셨으니 함부로 여기 오지 마오. 보는 눈이 많소. 차마 맞대꾸할 거리가 없어 아무 말을 못하고 헐렁한 소매 끝만 만지작대다 문을 열고 막 나가려던 예선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다시 발을 멈추었다. "그러한데 공영께서는 이 서찰을 어찌 얻으셨소?" 공영이 대답했다. 지나가는 꼬리를 잡았소.



 "내게 꼬리를 잘 잡는 개가 하나 있소. 수족이란 것들이 영 쓸모가 없어서 내 친히 하나 주워 왔지."


 "내 들어올 때 봤던 문지기 놈이라면 귀도 입도 모두 성한 놈이 아니오. 믿을 만한 자요? 작은 말 하나라도 새어나갔다간 전부 내 꼴이 날 것임을 공영도 알지 않소."


 "예선이 무얼 걱정하는 건진 알고 있소. 다른 주인을 한 번 물었던 적이 있던 개요."


 "아니, 그런 자를 어찌 거두셨소. 말이 되는 소리요?"



 예선 본인에게까지 출입을 자제하라 당부할 정도로 꼬리를 감추던 공영이 무슨 연유로 그런 자를 끼워넣었는지 예선이 알 길은 없었다. 바깥 공기만큼이나 파랗게 얼어 있던 공영의 눈동자가 책 위를 바삐 훑어내리다 말고 이내 말문이 트임과 동시에 다시 내려앉았다. "예선께서는." 아직도 문 귀퉁이를 잡은 채로 어정쩡하게 서 있던 예선으로서는 공영이 무얼 대체 어찌 하려는 것인지 짐작조자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한참을 기다리며 머뭇거렸다.



 "예선께서는 참의 자리에서 물러나더니 총명하셨던 머리마저 어떻게 되신 모양이오. 어디 가서 짖을 이빨도 내 알아서 모조리 뽑아 버릴 것이니 예선은 이런 사사로운 일에 신경 쓰지 마오."














 나리. 이것은 어찌 할까요.


 풀죽어 시든 채로 덩그라니 장식장 위에 놓인 이름모를 꽃송이 하나를 여종이 가리키며 웃었다. 수줍은 표정으로 발그레 뺨을 붉히고 있던 꽃잎들은 끝이 새카맣게 변해 고개를 떨군 채로 외롭게 여종의 손 끝을 발판삼아 허공을 날고 있었다. 공영은 거기 두어라, 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억양으로 말을 하려다 문득 입술을 거두고 죽어버린 꽃대 끝을 바라보았다.


 …내다 버리거라.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기분을 알 수 없는 울음을 속닥대는 차분한 밤새 소리가 굳게 닫힌 창을 흔들었다. 손가락만큼이나 얇은 붓을 쥐고 손수 읽던 책을 몇 장 필사하던 공영이 밤이 깊었음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창 밖에서 익숙한 빛이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소리 없이 장지문을 열고 툇마루 앞까지 걸어나온 공영이 이내 기대있던 문에서 손을 떼고 잠깐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에 눈이 부셨다. 그렇게 말도 움직임도 없이 서 있던 공영은 한참 전부터 소나무 사이에 처량히 앉아있는 그림자를 이내 불러내었다.



 "문아."

 


 귀도 입도 모두 성한 문지기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쳤다. 새하얗게 부서지는 금빛 머리 아래로 캄캄한 색의 옷깃과 희미한 등불조차 가리지 못하는 달빛에 곱게 빛나는 파란 눈이 반짝이더니 이내 꼬리를 휘어보이며 순진하게 웃는다.



 "문아. 밤이 차구나."


 "……."


 "…그만 들어와도 좋다."



 공영은 그리 담담하게 말하고 먼저 방향을 돌렸다. 바람이 멎고 흔들리던 나뭇잎들이 다시 가라앉았다. 곱게 다듬어진 버선코 끝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 위를 비추던 어줍잖게 이른 봄 달빛이 차게 식고 시기를 모른 채 일찍이 핀 꽃 몇 송이가 그만 가지에서 떠날까 차마 망설이고 있는는데 옅게 바래 마모되어 색을 잃은 그 목소리 안에는 덧없는 감정 한 올만이 고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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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초반의 글이나 16년에 아주 약간씩의 어조 수정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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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사람





 툭...투둑... 







 불규칙하게 걸리는 짧은 소음이 밖에서 비가 오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후에 다시 생각해보면 굵은 빗방울 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벽이 얇았을 리가 없었지만 그 때는 생각이 흐르는 길을 누군가 중간에 막아놓은 것처럼 정신이 반쯤 갈라진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그 희망만이 머릿속을 온통 채우고 있었다. 환한 곳에서는 앞이 보이는 밝은 곳으로 아무렇게나 걸었고, 불이 꺼진 곳은 어두운 대로 벽을 짚으며 걸었다.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웃옷 주머니 자락이 주방에서 훔쳐온 식칼을 쥔 무거운 왼손 근처에서 손목을 스치며 흔들거렸다.




 어둡게 드문드문 보이는 계단을 한 차례 내려갔을 때 수영장으로 들어가는 탈의실 문을 지나쳐 쭉 안쪽으로 새까맣게 이어진 복도 끝에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시간까지 저 장소에 있을 법한 사람은 몇 명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고조된 끝없는 긴장으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일부러 특정한 인물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모른다. 모른다. 나는 거기 있을 사람의 이름을 모를 것이다. 거기 있는 것은 그냥 내가 기억에서 잊어버린 어떤 사람일 것이다.




 핏기없는 새하얀 얼굴. 어깨너머로 넘어가던 빛 안 드는 까만 머리카락. 누나. 응, 예환아. 어젯밤에 꾼 꿈에서는 그렇게 평소처럼 대답해주지 않았다. 사람을 죽여서라도 지키지 못한다면 혼자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복도 끝에 다다름과 동시에 고개를 돌렸을 때 제일 처음 보인, 어제 꿈에서 나온 것과 비슷한 뒷모습에 무심코 평생동안 입에 붙은 호칭을 부르려다가. 그대로 천천히 일어나서 불 꺼진 복도 쪽을 돌아보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뱉어내려던 짧은 말들이 그대로 굳어버리고, 이내 다시 시선을 그 아래로 흘렸다가 반쯤 열었던 입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박예환. 유달리 낯설게 들리는 세 글자가 잠시 끊겼다가 다시 조용한 양궁장을 채운 뒤 복도 밖으로 흘러넘쳤다. “봤어?” 당황스러울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였고, 지나치게 위태로워 보이는 불안한 표정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혼자만 다른 세계에 있던 것처럼 멈춰있던 입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기... 거기 서서 말해. 움직이지 말고.”




 그런 말을 하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내뱉자마자 굳은 상대방의 입가를 보고 후회할 단어들만 긁어모아 던진 것 같았다. 잠깐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먼발치 아래로 보이는 시체의 얼굴을 확인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다가 손과 발끝까지 차례로 구석구석 싸하게 핏줄처럼 퍼져나갔다. 죽은 사람에게 가지는 동정,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 안타까움,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떠올랐다가 이내 가라앉은 것이 끔찍하게도 묵직한 안도감이었다. 이제 내가 저지르지 않아도 되어서.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척추 끝에서 새파란 추위가 올라왔다.




 백시연의 시선이 왼손으로 들고 온 칼끝에 머무르는 것이 보였다. 나도 그를 따라서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이유를 모를 정도로 온몸이 차갑게 식었는데 꽉 막힌 눈가와 코끝만 혼자 뜨거웠다. 당장에라도 차라리 이대로 타버렸으면 싶을 정도로 달아오른 고개를 들어서 상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밝은 목소리로 그 눈길에 대답했다. “이걸 어쩌냐.” 그렇게 말하고는 애써 웃으려 입꼬리를 틀었다. 이게 정말로 별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나도 비슷한 짓 하려고 가져온 건데.” “.......”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쓸모없게 됐네.” 다행히도 말야. 마음 속에 떠오른 소름 끼치는 뒷말은 붙일 수가 없었다.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인생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을 것 같았다.




 칼을 쥔 손에 천천히 힘을 풀며 더이상 밖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지금까지 빗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냥 반쯤 뜯긴 소매 단추가 벽에 기대 걸을 때마다 부딪치면서 내는 소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차마 미안하다고 말할 수는 없이 백시연의 눈을 보았다가, 허망한 얼굴로 생기 없는 형광등 빛을 받아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얗게 빛나는 식칼의 날 끝을 바라보았다. 결국은 깨끗한 상태로 원래 있던 곳에 돌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백시연의 손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못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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